J12 SCHOOL
예수제자학교

인터넷 서점

Global Group

Best your Partner

인터넷 서점

J12 도서안내

37. 제자수양회 [청지기의 삶]

  • 210.104.97.233

 

  J12제자훈련교재 10-1

 

제자수양회

청지기의 삶

오준철

 

J12

 120p  인도자용 6,000원 / 제자용 5,000원 

 

 

* 사용방법

  제자반을 마친 성도에게 하나님의 충성된 청지기의 삶을 살도록

    교회에서 4주간 하거나 1일 수양회로 합니다.

           

 

 

* 머리말

 

동네에 사과장수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수없이 전도를 했지만 사과장수 아주머니는 끔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과장수 아주머니가 스스로 교회를 나왔습니다. 교인들이 놀라서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우리 가게에 들르는 한 신사분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분은 항상 못생기고 덜 싱싱한 사과를 사 가셨어요. 너무 미안해서 제가 사과를 몇 개 드렸더니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셨어요. 지금 당장 먹을 것이기 때문에 좀 썩은 것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 대신 남들에게 싱싱한 사과를 팔라고 했지요. 저는 그때부터 그분에 대해 조금씩 존경심을 갖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그 분이 저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하잖아요. 그래서 그 분이 믿는 하나님을 저도 믿기 위해 두말없이 따라 나섰지요.”

삶이 곧 전도입니다. 희생 없는 열매는 없습니다. 전도는 희생입니다. 우리가 가까운 이웃에게 삶으로 감동을 주지 못하면 전도는 구호와 이론에 그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항상 삶으로 감동을 주셨습니다.

 

 

 

 

[목차]

 

머리말

교재 사용법 및 인도자 유의사항

제1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제2과, 신실한 시간의 청지기

제3과, 현명한 물질의 청지기

제4과, 충성된 복음의 청지기

 

부록

1. 제자수양회 안내

2. 수양회 사전 준비사항

3. 수양회 지침

4. 조별모임 인도방법 (적용과 나눔)

5. 조 편성표

6. 수양회 소감문 양식

7. 수료증

8. 1일 수양회 시간표

 

 

 

 

* 교재 사용법 및 인도자 유의사항

 

1) 인도자는 반드시 ‘부록’을 자세히 읽고, 제자수양회 운영방법을 충분히 숙지한 후에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2) ‘파랑 글자’로 된 내용은 인도자용 교재에만 있는 것으로, 제자들이 받아 쓸 정답과 인도자가 제자들에게 전달할 메시지 및 인도자가 진행하면서 참고할 내용입니다.

3) 제자용 교재는 ‘검정 글자’로 된 내용만 있으며, 필기도구를 가지고 밑줄에 정답을 받아쓰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4) 전체 진행시간을 1시간 이내로 하여, 지루하지 않게 마치는 것이 좋습니다.

 

 

 

 

 

[내용 미리보기]

 

제1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 찬양 / 찬송가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 합심기도

1) 성령님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을 사모합니다. 여기에 임하시옵소서.

2)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보혈의 피로 씻어 주옵소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3) 기도의 불길,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옵소서.

4)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삶에 적용하여 열매 맺게 하옵소서.

 

 

 

* 오해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주님의 형상을 닮도록 나의 모난 부분들을 깎으실 때, 하나님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셨지만, 나는 그것을 ‘고난’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나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해, 낮은 마음과 넓은 마음을 갖게 하시려고 좁은 길로 인도하실 때, 하나님은 그것을 ‘은혜’라 부르셨지만, 나는 그것을 ‘연단’이라 불렀습니다.

사탄이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질투하여 나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려고 내가 물질의 부요함과 세상의 즐거움 속에 있게 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시험’이라 부르셨지만, 나는 그것을 ‘축복’이라 불렀습니다.

이 세상의 기준과 이 세상의 시선으로 하나님의 일들을 바라보았기에, 나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고 잘못 받아들일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아버지의 계획하심과 뜻하심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하나님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시고, 항상 하나님과 시선 맞추기를 게을리 하지 않게 하소서.

 

 

* 성경 말씀 / 마태복음 7:13-14

성경을 읽을 때는 마음과 생각을 집중해서, 본문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1. 말세에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3개의 넓은 문이 있습니다.

 

1) 말세에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첫 번째 넓은 문은 편리주의입니다.

 

다니엘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지식과 문명의 발달이 사람을 아주 편리하게 해줍니다. 옛날에는 가마솥에 불을 지펴 밥을 했기 때문에, 배가 고파도 밥이 다 될 때가지 참고 기다려야 했지만, 요즘은 전기밥솥에 예약만 해놓으면 밥이 자동으로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인스턴트식품이 발달해서 전자레인지에 몇 분만 돌리면 쉽게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옛날에는 걸어서 며칠씩 걸리던 길도 요즘은 자동차로 몇 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수작업으로 하루에 몇 개씩 만들던 물건을 요즘은 기계로 쉽고 빠르게 대량으로 생산합니다. 그야말로 마지막 때는 육신생활의 모든 것이 극도로 편리해진 시대입니다.

사람이 편리주의라고 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그것이 몸에 한번 익숙해지게 되면, 육신은 문명의 안락함에 안주하게 되고, 영혼은 점점 병들어 가게 되어, 결국 하나님을 멀리하게 됩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육신이 좀 불편하더라도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 또한 신앙의 선조들이 걸어갔던 천로역정의 길, 생명의 길, 진리의 문, 좁은 문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1-5,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한 할아버지가 손자의 손을 잡고 도끼자루로 쓸 만한 나무를 구하기 위해 산으로 갔습니다. 도끼자루로 쓰는 나무는 아주 단단한 나무라야 합니다. 보통 나무는 한번 세게 내려치면 자루가 빠져버리거나 부러져 버리기 때문에, 도끼자루는 쇠처럼 아주 단단한 나무라야 합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길을 가다보니, 산 밑에 곧게 자란 참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손자가 큰소리로 “할아버지, 저기 좋은 나무가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그 나무를 한번 쳐다보시더니 “안 된다. 더 올라가보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올라가자, 아주 잘 생기고 곧게 잘 자란 나무가 있었습니다. 손자가 또 “할아버지, 저기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힐끗 쳐다보더니, “안 된다. 조금 더 올라가자.”라고 했습니다.

결국 할아버지와 손자는 수많은 나무들을 다 지나서 숨을 몰아쉬며 산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드디어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했습니다. “저기 온갖 비바람을 맞고 꿋꿋이 자란 저 나무를 찍어라.”

 

하나님은 편리주의로 길들여져서, 시련을 겪지 않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나약한 사람을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특리 실리주의로 길들여져서, 남이야 피해를 보든 말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희생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마지막 때 환란이 오면 주님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안락을 위해 주님을 배반할 수 있는 가룟 유다와 같은 위험한 사람들로서, 그들은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 말세에 영혼을 병들게 하는 두 번째 넓은 문은 상대주의입니다.

 

말세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전반에서 들리는 공통된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변해야 산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변해야 할 것이 있고, 변하면 절대 안 되는 절대적인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갈라디아서 1:7-8,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세상에는 변해야 할 것이 있고,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장과 발전을 위해 변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할 절대적인 것이 변하게 되면, 그것은 변화가 아니라 변질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다 변해도 진리가 변하면 안 됩니다. 세상이 다 변해도 복음이 변하면 안 됩니다. 진리가 변하면 거짓이 되고, 복음이 변하면 이단이 됩니다. 신앙이 변하면 그것은 변화가 아니라 변질이며 타락입니다.

 

상대주의(relativism)라고 하는 것은 모든 진리와 가치, 심지어 하나님과 성경 말씀까지도 다 상대적이라고 보는 인본주의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시며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상대화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절대자까지 상대화하게 되면, 결국 인간은 근본을 떠나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게 됩니다.

 

이사야 45:18,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3) 말세에 영혼을 병들게 하는 세 번째 넓은 문은 실리주의입니다.

 

잠언 22: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말세에는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이념을 버리고, 세계 모든 나라와 개인이 하나같이 실리주의(utilitarianism)로 갑니다.

여기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실리주의가 발전하면 결국 극단적 이기주의로 가기 때문에 위험이 있습니다. 극단적 이기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인과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상은 말세에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심각한 집단 이기주의로 나타나게 됩니다.

기독교의 황금률에 해당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기주의와 정반대인 이타주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 인류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극단적 실리주의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상반될 뿐만 아니라 비성경적인 인본주의 사상이므로, 이러한 세속의 흐름을 경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요한복음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2.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특별히 당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3:22-24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많다 적다 직답을 하지 않으시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히틀러의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순교한 독일 신학자 본훼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목사님은 “값싼 은혜가 교회의 치명적인 원수입이다. 우리는 오늘 값비싼 은혜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값싼 은혜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없는 예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초점을 십자가에 맞추셨습니다.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너무 값싼 은혜, 값싼 축복, 너무 가볍고 얕은 곳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을 깊이 만날 수가 없고 주님과 깊이 통할 수가 없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얕은 곳에서, 십자가 없는 예수를 찾고, 고난 없는 은혜를 찾고, 대가 없는 보상을 바라고, 과정 없는 성공을 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극단적 편리주의와 실리주의에 길들어진 인본주의적 사상이며, 주님의 십자가를 내버리고 당장 눈앞에 있는 쉬운 성공과 현세적인 축복을 쫓아가게 하여,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사탄의 유혹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을 주실 때, 책장을 넘기듯이 기적적으로 하루아침에 뚝딱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진퇴양난의 홍해와 광야 사막의 목마름, 질병, 추위와 굶주림, 수많은 적들과의 피 터지는 싸움, 철벽 성 여리고와 죽음의 강 요단을 건너, 길고 긴 고난의 여정을 통과한 후에 비로소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가나안(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넓은 문이 아니라 지극히 좁은 문이었습니다.

 

제자들도 처음에 예수님을 따라갈 때, 그들은 너무나 쉬운 기적을 바랬고, 쉬운 축복을 바랬고, 쉬운 출세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을 따라가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들을수록 전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달콤한 말씀을 하시지 않고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마5:10).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부자는 천국 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우니라.”(마19:23)고 하시면서, 항상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한 중국 청년이 미국 명문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를 마치고, 미국 정부로부터 좋은 자리를 제공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청년이 미국 정부의 관리가 되기를 사양하고, 험난한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좋은 자리를 거절하고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의화단사건 때 중국 내륙지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마을에는 큰 신당이 있었는데, 하루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마적 떼 같은 군인들에게 끌려 그 신당으로 왔습니다. 군인들은 크리스천들에게 신상에게 절하고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도록 위협했습니다. 우상에게 절을 하면 살려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군인들은 크리스천들을 한 줄로 세우고, 우상 앞을 지나갈 때 절을 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끌려온 163명의 크리스천들은 절을 하기는커녕 고개도 숙이지 않고 그 우상 앞을 묵묵히 걸어가다가,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는 군인들 앞에서, 목이 땅에 떨어져 뒹굴면서 순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저 절만 한 번 하면 살 수 있는데, 163명의 크리스천들은 모두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자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제 아버지도 그 163명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비록 어렸지만, 그 사건은 제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깨우쳐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 의화단 사건: 중국 청(淸)나라 말기에 일어난 외세 배척 운동. 1900년 6월, 베이징에서 교회를 습격하고 외국인을 박해한 의화단(義和團)을 청나라 정부가 지지하고 대외에 선전포고를 함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하게 된 사건.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은 어떤 문입니까?

 

1) 이 세상 육신의 것들을 많이 포기하고 버려야 들어갈 수 있는 공간적으로 좁은 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에는 커다란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문은 아침에 열었다가 밤이 되면 닫아버립니다. 그러므로 밤중에 늦게 들어오는 사람들은 성문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큰 성문 옆에 따로 작은 문을 만들어 놓고, 늦게 들어오는 사람들이 성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문이 너무 좁아서 사람들이 바늘귀문이라고 부를 정도로 좁은 문이었습니다.

바늘귀문은 말이나 나귀를 타고 들어올 수도 없고, 짐을 가지고 들어올 수도 없었습니다. 또 문이 너무 낮고 폭이 좁아서, 머리를 숙이고 몸을 움츠려야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도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는 좁은 문은 세상의 것들을 다 버리고, 오직 생명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문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천국 문은 좁은 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것들을 다 가지고는 들어갈 수 없는 아주 좁은 문입니다. 천국문은 오직 구원받은 영혼만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 문으로 들어가려면, 버려야 할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교만도 버리고, 욕심도 버리고, 명예도 버리고, 때로는 물질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갔던 제자들도 많은 것을 버려두고 좁은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4:22)고 했고, 수가성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으며(요4:28), 세리 삭게오는 돈 보따리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눅19:8).

 

 

2)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은 때를 놓치면 들어갈 수 없는 시간적으로 좁은 문입니다.

 

밤이 되면 예루살렘 성의 큰 문이 닫히고, 그 다음에 더 늦은 시간이 되면 좁은 문도 닫혀버립니다. 정한 시간이 돼서 문이 한번 닫히면 열리지 않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전도서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요한복음 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천국 문은 항상 열려있지 않습니다. 또한 한번 닫히면 아무도 열 자가 없습니다(계3:7). 그러므로 우리 앞에 천국 문이 열려 있을 때 들어가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일할 수 없는 밤이 오기 때문입니다.

문은 항상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앞에 있는 구원의 문, 또한 축복의 문이 닫힐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종말론적인 기회가 아직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을 때,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반드시 붙잡아야 합니다.

아모스 8:11-1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는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은,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영적으로 좁은 문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구약시대에는 노아 홍수 때 구원의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며, 또한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도 구원받지 못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노아 홍수의 때와 같이 마지막 때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도 구원받지 못할 자가 많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와 같으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그와 같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까지도 가로막는 자들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13,3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집에 운동기구를 쌓아 놓고 산다고 해서 몸이 건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운동기구를 가지고 운동을 해야 몸이 건강해집니다. 운동은 남이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처럼 이름만 가진 명목상의 교인들과 그 마음에 진실한 믿음이 없는 형식적인 교인들은 들어갈 수 없는 영적으로 좁은 문입니다.

성경책을 들고 교회를 다닌다고, 예배당에 앉아서 찬송을 하고, 헌금을 하고, 예배의식을 능숙하게 행한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진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에 진실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연히 그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믿음의 속성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입니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4. 영적으로 좁은 문은 믿음의 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신앙생활은 안식일 준수, 십일조, 성경 암송, 율법 준수 등 요즘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철저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2,134개의 규칙을 만들어서, 발걸음 하나하나 옮길 때마다 하나님의 뜻에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너희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23:33).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눅13:28)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신앙생활을 가장 잘 한다고,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8: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종교개혁자 루터(Martin Luther,1483-1546)는 원래 가톨릭 신부였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있는 죄책감을 지우고 죄를 씻기 위해, 가톨릭교회가 정한 율법과 규칙들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심지어 맨 무릎으로 돌계단을 기어오르며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피가 나고 뼈가 드러날 지경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섬광처럼 성경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루터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 나의 고행과 나의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구원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없다. 내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다.”

 

루터의 깨달음은 전 세계를 지배하는 그 거대한 가톨릭교회와 홀로 맞설 힘을 주었습니다. 루터는 예수님께서 이미 열어 놓았으나 교회가 닫아버린 새로운 믿음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그의 깨달음은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오직 성경말씀으로(sola scriptura)’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것이 종교개혁의 3대 모토(motto)가 되었습니다.

 

유대교(Judaism)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을 율법과 인간의 의로 묶어버리고, 성직자들은 율법을 무기삼아 자신들을 높이고 백성들은 정죄함으로써, 천국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또한 로마 가톨릭(Roman Catholicism)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보혈로 다시 열어놓은 천국 문을, 인간이 만든 교리와 공적사상(功績思想)으로 다시 천국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로마서 10:2-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신앙생활은 율법과 규칙 준수로 자기 의를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분의 책망을 들으며 내 잘못을 바로 잡고, 그분의 위로를 들으며 새 힘을 얻고, 그분의 약속을 가슴에 품고 오늘의 고난을 이기며 나아가는 천로역정의 길입니다.

인간의 의지와 이성으로 들어가는 문은 넓은 문입니다. 구원의 좁은 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즉 주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노아 홍수 때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곧 홍수 심판이 있을 것이니 방주로 들어가라.’(창6:17-20)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홍수심판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방주뿐이었습니다. 방주에 타면 살았고, 방주에 타지 않으면 돈이 많아도 죽었고, 권력이 있어도, 힘이 세도, 얼굴이 예뻐도, 착하게 살아도, 인격이 훌륭해도...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다 죽었습니다.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홍수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믿지 않으면 어떤 방법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구원의 진리를 강력하게 선포해주는 사건입니다.

 

출애굽 당시 유월절에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도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 양의 피를 뿌리라.”(출12:7-13)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살았고, 어린 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선한 행실이나 신분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다 죽었습니다.

여기서 어린 양의 피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으면 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지 않으면 다 죽는다는 것을 계시해주는 사건입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구원)이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맺음말

 

세상은 넓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넓은 세상을 주님의 제자들처럼 좁게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기독교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약260-339)의 교회사에 기록된 12제자의 순교일지를 보면, 실제로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최후의 순간까지 신앙을 지키며, 좁은 문으로 들어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습니다.

안드레는 그리스에 가서 전도하다가 아가야성에서 엑스(X)자형 십자가에 줄로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에게 칼로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요한은 에베소에서 전도하다가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지만, 다시 튀어 나오는 바람에 박해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결국 그는 밧모섬에 귀향 보내졌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 브루기아에서 전도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와 인도에 가서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임을 당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 가서 전도하다가 창에 맞아 죽었습니다.

마태는 이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나안인 시몬은 애굽에서 전도하고 다시 유대에 돌아와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야고보의 동생 유다는 페르시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가롯 유다 대신 12제자의 반열에 오른 맛디아는 이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고린도후서 4:7-10,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며,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라는 신앙 모토로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 400년이 지난 지금, 교회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생명의 복음을 기복신앙과 물질주의로 세속화하여 다시 복음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이성의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주님의 제자들처럼 환란과 역경이 있을지라도, 순교의 정신으로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할 줄 믿습니다.

 

 

 

* 적용과 나눔 (조별모임)

이번 과에서 ‘깨달은 것’을 기록하고 나눠 봅시다.

 

 

 

 

* 찬양 / 찬송가 521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 합심기도

 

* 마침기도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