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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행복전도 사랑양육 9권-불교인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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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p  인도자용 5,000원 / 제자용 4,000원     

  

 

[목차]
 

제81과, 예수님의 사상과 삶을 행하라

제82과, 김 집사의 전도 이야기

제83과, 전도자의 자기관리

제84과, 미장원 전도

제85과, 복 받는 비결 7가지

제86과, 나는 이렇게 예수를 믿게 되었다

제87과, 불교인 전도(1)

제88과, 불교인 전도(2)

제89과, 불교인 전도(3)

제90과, 불교인 전도(4)


 

[미리보기]

 

제87과, 불교인 전도 (1)

 

* 찬양 / 250장,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 시작기도

1) 성령님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을 사모합니다. 여기에 임하여 주옵소서.

2) 말씀하여 주옵소서. 은혜 내려 주옵소서. 깨달음과 변화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3)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삶에 적용하여 열매 맺게 하옵소서.

 

* 성경 본문 / 사도행전 17:16~34

성경을 읽을 때는 마음과 생각을 집중해서, 본문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1. 전도박사 칼럼

 

한국에는 약 5만개의 사찰과 15만 명의 승려와 50만 명의 무당 점쟁이와 약 2,000만 명의 불교 관련 신도들이

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적어도 3명 중 1명은 직간접적으로 불교의 영향 하에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불교인들을 사탄의 수하에서 구출해 내려면, 사탄이 도구로 사용하는 불교의 실체와 그 허구성을 영적으

로 진단하고,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해내야 한다.

 

원래 불교(佛敎)는 깨달아 지혜를 얻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곳이지, 신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는

종교가 아니다. 즉 불교는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고 수양하는 곳이지,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

다. 참 종교란 신을 믿음으로 영혼이 구원을 얻는 것인데, 석가는 원래 신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주의자였을 뿐

만 아니라, 석가 자신도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석가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신이 아니라 피조물 즉 인간이라는 것이다. 석가 자

신도 인간이며 죄인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인간을 구원할만한 능력이 없다. 자신도구원할 능력이 없어서 진리를

찾다가 죽은 사람에게, 구원해달라고 매달리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고 모순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얻고 싶은 것이 연약한 인간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진리를 모르고 방황하는 그들에게 진리의 복음

을 전해야 한다.

 

석가는 자신이 교주가 되거나 우상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석가를 불교의 창시자로 만들어 종교화 한 것은 석

가를 통해 조직과 단체를 만들어 세력을 키우고 이권을 찾기 위해, 타락한 석가의 제자들이 그렇게 한 것으로, 현

재의 불교는 원래 석가의 가르침과는 너무 거리가 먼 세속화된 종교적산물이다.

 

인도는 원래 미신의 나라다. 석가 생존 당시에도 식물, 동물, 광물, 하늘의 해, 달, 별과 같은 자연을 신으로 숭배

했다. 석가는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깊은 회의와 의문을 갖고 신의 존재와 영혼의 존재, 그리고 사후 세계에 대

한 의문을 풀기 위해 29세에 부인 야소다라와 아들 나훌라, 아버지 정반왕을 버려두고 홀로 가출 후 입산했다.

입산 후 6년 동안 뼈를 깎는 고행 끝에 35세에 나름대로 도를 깨우쳤으나, 결국 신도, 영혼도, 사후세계의 천국과

지옥도 없으며, 생로병사의 인생문제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석가가 깨

달은 도(道)의 전부이며, 여기까지가 불교의 한계다.

 

‘방편(方便)’이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번뇌로 고통하며 방황하는 인간을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꾸며낸 이야기를

사실처럼 말하여 중생(衆生)을 선도하는 수단이다. 인생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찾지 못한 석가는 해답대신

방편으로 중생을 선도하기로 했다.

 

석가 생존 당시 인도에 ‘귀사코타미’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이 여인에게는 외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

기 외아들이 죽게 되자, 여인은 그 충격으로 그만 정신이 돌고 말았다. 여인은 아들의 시체를 등에 업고 거리로

나가, 죽은 아들을 살려줄 사람을 찾아 이 마을 저 마을을 헤매고 다녔다.

 

그때 마침 석가의 한 여 제자가 “기원정사라는 절을 찾아 부처를 만나면 죽은 아들을 살려줄 것이라.”고 했다. 죽

은 아들을 데리고 온 여인을 본 석가는 “여인아, 죽은 아들을 살리려면 겨자씨가 있어야 하느니라. 단, 5대가 한

집안에 살면서 그동안 한 명도 죽은 사람이 없는 집에서 겨자씨를 얻어 와야 하느니라.”고 했다. 석가의 말을 듣

고 여인은 곧바로 마을로 내려가서 겨자씨를 찾았으나, 5대가 한 집안에 사는 동안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을 한 집

도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요히 눈을 감고 있는 부처를 보고 비로소 환상에서 깨

어나 현실을 인정하고, 아들의 시체를 산에 묻고 돌아와 부처의 제자가 되었다.

 

이처럼 석가는 다른 사람이 꾸며 놓은 이야기나 직접 만들어 낸 이야기를 가지고 인생들을 선도하고 가르쳤다.

윤회설, 극락설, 전생설, 환생설과 같이 끝에 설(說)자가 붙은 말은 사실이 아니라 중생을 선도하기 위한 방편으

로 꾸며낸 이야기(說)이다.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 극락설, 전생설, 환생설 등과 같은 종교적인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로하고 달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들이므로, 이러한 설(說)을 사실로 믿으면 오

히려 스승인 석가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제자가 되는 것이다.

 

옛날에 어떤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가서 고려장을 했다. 잠시 후 아버지는 지게를 버려

두고 마을을 향해 황급히 내려갔다. 그때 같이 따라갔던 손자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손자는 불쌍한 할아버지를 버려두고 쏜살같이 달아난 아버지가 너무 이상했던 것이다. 생각 끝에 손자는 아버지

가 버리고 간 지게를 다시 지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 갔다. 그때 뒤를 돌아본 아버지가 “이놈아, 지게를 거기 버려

두고 오지 못하겠느냐!”며 야단을 쳤다. 그때 손자가 “아버지도 할아버지처럼 늙으면 지게가 있어야 제가 아버지

를 지고 와서 버릴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아버지가 크게 깨닫고, 다시 할아버지

를 모시고 내려와서 극진하게 섬겼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불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편(方便)인데, 이처럼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린다든지, 홍해를 가른

다든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든지 하는 인생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지 못하고, 현재 처한 상태에서

사람들이 인생을 바르게 살도록 선도하고 깨우쳐 주는 것이 불교의 본질이며, 동시에 여기까지가 불교의 역할이

며 한계인 것이다.

 

석가 자신도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얻지 못해 방황하다가 결국은 포기한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그러

므로 석가를 신격화해서 전지전능한 신으로 우상화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또한 그것은 본래 석가의 가르침

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역대상 16:26, “만국의 모든 신은 헛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도다.”

 

불교는 허무(虛無)로 시작해서 허무로 끝난다.

 

식중독으로 심한 고통 속에 죽어가는 스승을 바라보며 슬피 우는 제자들에게 석가는 “인생은 참으로 허무 무상

하구나! 너희들도 나처럼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수행 정진하도록하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

다.

 

만약 부처가 방편으로 가르친 윤회설과 극락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이라면 ‘나는 죽어 극락으로 가니

슬퍼하지 말라!’며 남은 자들에게 소망을 줬어야지, 왜 인생이 허무하다고 했겠는가? 부처의 죽음 앞에서 슬피

우는 제자들에게 극락(極樂)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인생이 허무하다는 말만 반복한 것은 부처 자신이 신의

존재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내세를 부정하는 무신론자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부처는 죽기 전에 “나는

너희들과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니 나를 신으로 숭배하지 말라. 만약 나를 신으로 숭배하는 사람이 있다

면, 그는 내 제자가 될 수없다.”고 했다.

 

부처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부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부처를 욕되게 하는 행위다. 석가는 자신이 교주가 되

거나 신의 위치에서 숭배받기를 거부했던 현인(賢人)이었다. 오히려 일부 불교경전에는 인류의 구원자인 예수가

오면 자신의 도는 아무런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荷蒔耶蘇來 (하시야소래) 언제가 예수 오시면

吾道之油無燈也 (오도지유무등야) 나의 도는 기름 없는 등과 같다.

팔만대장경 라마다경 38:8

 

불교는 원래 깨달아 지혜를 얻고 몸과 마음을 수행하는 윤리, 도덕, 철학을 하는 곳이지, 영적 세계와 내세에 대

한 답을 제시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석가는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하는 곳이며

수행하는 곳이다.

 

한국 불교계의 거장이었던 이성철 종정은 1982년 4월 초파일 설법(說法)에서 이렇게 말했다. “극락(極樂)이 있다

고 말하는 사람은 잠잘 때 꿈속에서 잠꼬대하는 것과 같다. 불교(佛敎)를 죽어서 극락이나 가려고 염불하는 종교

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중이 목탁치고 염불하여 명을 주고 복을 준다고 하

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처럼 부처의 이름을 팔아서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방편을 삼는다면, 그 중은 사이비요

도둑이다. 그리고 그러한 중들이 사는 절은 도둑의 소굴이다... 사람이 마음을 떠나서는 일체가 존재할 수 없다...

이제 불교는 절 안에 있는 산신각이나 칠성각을 모두 철거하고, 미신에서 벗어나 불교 본래의 위치로 되돌아가

야 한다.”

 

성철은 부처가 추구하는 도를 깊이 깨달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철은 죽기 전에 “한 평생 무수한 사람들을 속였

으니, 그 죄업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하다. 산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니, 한 덩이 붉은

해 푸른 산에 걸려있다.”고 했다.

 

이것이 불교의 한계다. 불교에서 최고로 깨달은 사람은 자기가 지옥으로 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죽는 경지에 이

르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들은 자기가 지옥으로 간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죽었다. 그것은 불교의 궁

극적인 도달점이 인생의 문제와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깨닫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령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지옥으로 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해도, 죄와 사망

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2. 말씀 연구

 

1) 바울은 우상숭배자들에게 어떻게 전도했습니까?

 

사도행전 17:22~25,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

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

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바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먼저 창조주 하나님을 알려주고, 그 다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31절)를 전했습니다.

 

 

2) 바울이 전한 말씀을 듣고 우상숭배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사도행전 17:32~34,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 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

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3. 나눔과 적용

 

이번 과에서 각자 깨닫거나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적을 알아야 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탄에게 속고 있는 불교인들을 구출하려면, 불교를 통해 역사 하는 사탄의

전략과 전술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만큼 사용하시기 때문에, 불교인들을 전도하고 양육할 수 있

도록, 불교에 대한 지식과 그들을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사랑을 준비해야 합니다.


 

* 찬양(헌금) / 252장, 나의 죄를 씻기는

* 합심기도

오늘 깨달은 기도제목과 각자의 기도제목을 돌아가며 말하고,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 마침기도(주기도문)

 

 

[미리보기]

 

제90과, 불교인 전도(4)

 

* 찬양 / 80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

* 시작기도

1) 성령님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을 사모합니다. 여기에 임하여 주옵소서.

2) 말씀하여 주옵소서. 은혜 내려 주옵소서. 깨달음과 변화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3)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삶에 적용하여 열매 맺게 하옵소서.

 

* 성경 본문 / 로마서 1:18~25

성경을 읽을 때는 마음과 생각을 집중해서, 본문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1. 전도박사 칼럼

 

두 여승을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은 주지승이라 했다.

 

전철역에 내린 여승들을 차에 태우고 음식점으로 갔다. 승복을 입고 밀짚모자를 길게 늘어 쓴 여승의 모습이 마

치 드라마 같은데 나오는 도사 같았다.

 

음식점에 들어가자 모자를 벗었다. 이제 40대 초반의 두 여인이 어떤 인생의 깊은 사연이 있었기에, 머리를 빡빡

밀고 산으로 들어갔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고기는 안 먹을 것 같아 시골밥상을 시켰는데, 여러 종류의 나물과 함께 비벼먹을 수 있도록 상이 차려졌다. 두

여승이 큰 그릇에 밥을 야무지게 비벼 한 톨도 남김없이 다 먹고, 밥그릇에 물을 부어 숟가락으로 휘저어 씻더니,

그릇을 번쩍 들고 물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마셨다. 신기한 듯 힐끔 쳐다봤더니, 눈치 챘던지, 절에서는 다 그

렇게 한다고 했다.

 

목사와 중이 한상에 마주앉아 밥을 먹고 있다는 것이 좀 이상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

누던 중, 주지승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목사님, 정말로 살고 싶지 않아요. 죽고 싶어요.”라는 말을 두 번이나 했기 때문이다.

 

김 집사가 전철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그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오늘 흔쾌히 만나자고 한 것도 뭔가 마음에 고

통스런 사연이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하지만 초면이라서 깊은 사연을 꺼내기가 어려웠던지, 일반적인 이야기만

하고 입을 열지 않았다. 나도 서두르지 않았다.

 

오전부터 저녁까지 종일 두 여승과 함께 했다. 자연히 그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됐다. 그들은 다른 중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조계종에 속한 승려들이지만, 불교조직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또 신도들도 받지 않고, 여승들끼리

모여서 조용히 수도하는 곳이라 했다.

 

주지승은 고향이 남쪽인데, 부모를 따라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언젠가 부모로부터 해방되면

꼭 절에 들어가서 중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학교에 다니면서도 몇 번이나 가출

을 했다가 부모에게 다시 잡혀가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기어코 집을 나온 후 중

이 되어,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산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문제가 생겼다. 현재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절은 모시던 고승이 세상을 떠나면서 물려준 것

으로,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소위 명당자리라고 했다. 그런데 종단으로부터 재산권이 독립된 개인소유인 데다 힘

없는 여승들만 모여 있어, 절을 탐내는 세력의 음모에 말려 현재 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소설 같은 내용이었다. 원래 그 절은 여승들이 모여 수도하는 곳인데, 그들을 지도하는 유명한

남자 중이 와서 얼마간 묵게 되었다. 그런데 1년 전 한 여인이 찾아와 “남편 때문에 도저히 못살겠다.”며 도와달

라기에, 같이 108일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기도를 마치고 그 여인이남자 중에게 “남편과 이혼을 해야겠으니 여

관에 가서 잠자리를 같이 하는 사진을 한 장만 찍어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 남자 중은 무인도에서 13년을 수도하고 온 사람인데, 세상과 너무 오랫동안 단절된 생활을 한데다 세상 물정

모른 어린아이 같아서 “스님이 제 부탁을 거절하면 저는 죽어버리겠습니다.”라며 수차에 걸쳐 간곡하게 부탁하

는 여인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어느 날 그 여인의 요청을 들어주기 위해 호텔로 가서, 여인이 원하는 포즈를

취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포즈를 취하자마자 난데없이 방문이 열리고, 남편과 경찰이 동시에 달려들었고, 현

장 범으로 붙잡혀 그날부로 교도소에 수감되는 신세가 되어, 10개월 형을 받고 현재까지 몇 개월 째 교도소에 갇

혀 있다는 것이다.

 

남자 중은 면회를 거부하고 그냥 그곳에서 10개월 동안 수도하는 셈치고 살겠다고 하는데, 주지승은 이 모든 일

이 자신의 잘못이라며, 손님으로 오신 스승을 욕되게 해서 너무 고통스럽다며,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거절당하

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그 먼 곳까지 면회를 다닌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전철에서 김 집사를 만나 전도를 받게

된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절을 빼앗으려는 것인데, 남자를 감방에 집어넣고 이제 자기들 마음대로 절에 들어와 폭력을 휘

두른다고 했다. 절 입구에서 폭행을 당하고 실신하여 병원에 실려 가기도 하고, 밤에 절을 습격하여 온갖 욕설과

폭력을 가하며 고통을 주는데, 이제 어쩔 수 없이 맞고소하여 법정싸움으로 까지 갔지만, 너무 지능적이고 교묘

하게 준비된 작전을 수행하기 때문에, 돈 없고 힘없는 그들로서는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다고 했다.

 

얼마 전 남자 중이 수감되어 있는 안양교도소로 갔지만, 일반면회라 불과 5분밖에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자세한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면회를 신청하고 그를 만나기로 했다.

 

오전 10시30분, 교도소 특별면회 장소로 갔다. 잠시 후 그가 나왔다. 밝은 모습이었다. 이미 모든것을 초연한 사

람 같았다. 특별면회 시간이 불과 30분이었지만, 도움을 요청하여 1시간이 넘도록여러 가지 대화를 나눌 수 있었

다.

 

그의 인생은 7살 때 커다란 변화의 사건이 있었다. 동네에서 축구하다 그가 찬 공을 맞고 친구가 그 자리에서 거

품을 물고 쓰러져 죽은 것이다. 그는 그때 받은 죽음에 대한 충격이 너무 커서, 죽음의 문제를 푸는 것 외에는 아

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부모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라고 하자 “학교에 가면 사람이 왜 죽어야 하는

지?”에 대해 가르쳐 주냐고 물었다. 학교는 그런 것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고 하자, 입학을 거부했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오직 죽음의 문제를 푸는 것이었다. 혼자 성경을 읽으며 성경으로 한글을 띠었고, 8살에는

성경을 통독했다고 한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서 목사님들과 대화를 나눴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

아 천주교에 가서 신부님들과 대화를 나눴지만 역시 풀리지 않아, 13세에는 여호와의 증인에 들어가 심취했다고

했다. 하지만 역시 자기가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다, 17세에 무작정 집을 나와 강원도에 있는 한 사찰에

들어가 몸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20여 년간 산속에서 수도생활을 하면서, 지난 13년 동안은 남해안에 있는 무인도에 움막을 짓고 생식

하며 도를 닦았는데, 거기서 책을 만권 이상 읽었지만 책에서는 더 이상 얻을 것이 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는 책

도 읽지 않고, 명상을 통해 도를 닦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제 죽음의 문제를 풀었느냐?”고 묻자, 놀랍게도 이제 자신은 죽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가 부처이고 자

기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제 아무런 신도 믿지 않고, 자기 스스로 영생한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7살 때 친구의 죽음을 현장에서 목도하는 순간, 강한 충격과 두려움으로 다른 영이 들어온 것

같았다. 죽음의 문제를 푸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도록, 그의 영이 마귀에게 포로된 것으로 보였다.

 

그는 성경을 구석구석 외우고 있었지만, 최초에 무에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 그는 창조주 하

나님을 부인했고,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자연은 그냥 자연이고, 만물은 영원히 죽지 않고

다른 존재로 윤회한다고 믿고 있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곁길로 빠져버린 그가 불쌍했다. 하나님의 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말해준 후 책을 한 권 주고 돌아왔다. 일반적인 대화는 가능했지만, 영적인 대화에는 한계가 있었다.

 

오늘도 종일 여승들과 함께 했다. 이제 부흥되어 세 사람이 되었다. 세 여승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그 중 한 여승은 S대학 국악과를 졸업하고, 산속에 들어가 가야금을 연주하며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고, 다

른 한 여승은 E여대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산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그 중 한 여승은 어려서부터 주일학교를 다녔고, 산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도 교회를 열심히 다녔으며, 성가

대는 물론 100여 차례에 걸쳐 외부에 특송을 하러 다닐 정도로 찬양을 잘했다고 했다.

 

음식이 들어왔다. 그러자 김 집사가 “오늘은 목사님께서 기도해주시겠습니다. 우리 같이 하나님께기도드립시

다.”라고 했다. 얼떨결에 세 여승이 두 손을 모으고, 다 함께 부처가 아닌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늘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생명들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풍성한 음식을 먹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안에서 떠나 죄 가운데 빠

졌지만,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여기에 있는 세 자매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구원하여 주시고,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천국 일꾼이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 이름

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기도가 끝나자 세 여승이 일제히 ‘아멘’으로 화답했다. 그러자 밖에 있던 식당주인과 종업원들이 신기한 듯 창문

밖에 모여 웅성거렸다. 목사와 중이 함께 앉아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모습을 보고, 뭔가 좀 혼란스러웠던 모양이

다. 나도 좀 그랬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들은 대부분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고, 현재도 그들의

부모형제들이 날마다 눈물로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그들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서, 바울

처럼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고 천국복음을 증거 하는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되게 하시기를 기대해 본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차를 돌려 그들이 거처하고 있는 절로 향했다. 절까지 가는 동안 차안에서 주지승이 그동안

의 사건과 인생여정에 대해 울며 간증했다.

 

절을 빼앗기 위해 1년 전부터 각본을 짜서 신도로 위장해 들어온 그 여인의 남편이, 어느 날 밤 절에 들어와 주

지승을 성폭행하고, 그 일이 있은 후 고통을 참지 못해 자살을 시도했는데, 그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

으신 모습으로 나타나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내가 너를 살리기 위해 이렇게 피 흘려 죽었는데, 너는 왜 그걸

모르고 죽으려고 하느냐?”는 환상을 보았다고 했다.

 

간증을 듣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녀의 인생에 개입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산에서 끄집어내실 때가

되신 걸까? 정금처럼 연단하여 그녀로 하여금 불교인들을 전도하게 하시기 위해 훈련하시는 것일까? 그렇게 된

다면 불교의 덫에 걸린 영혼들을 얼마나 많이 살려낼 수 있겠는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산 입구에 차를 대고 20분 정도 걸어서 절에 도착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명당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는 잘 몰라도, 절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욕심을 낼만한 자리임에는 틀림없었다. 고려시대에 쌓았다는 웅장한 돌

담이 절을 감싸고, 마당에는 노송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특별히 우리를 위해 준비했다며 ‘행자’라 부르는 이가 저녁상을 차려왔다. 하지만 음식에서 이상한절 냄새도 나

고 밋밋해서 영 밥맛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전도자는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도 두 여승이 승복을 입은 채 예배에 참석했다. 지난주에는 주일예배 후에 종일 김 집사가

두 여승을 집에 데려가서, 말씀으로 양육하고 피아노를 치며 함께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한다.

 

오늘도 예배 분위기에 생동감이 있었다. 성도들도 현장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 중에 교회 다닐때 찬양을 잘했

다는 여승이 설교 후 특송을 했다.

 

승복을 입고 410장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나 즐겁게 늘 부르네, 이 노래를 부를 때에, 큰 평화 임하도다. 평화 평

화 하나님 주신 선물, 오 크고 놀라운 평화, 하나님 선물일세”를 4절까지 부르는데, 찬양을 얼마나 애절하게 잘하

는지 가슴이 뭉클했다. 성도들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였다. 실로 감동적인 예배였다.

 

예배를 마친 후 돌아가는 길에 주지승의 손을 꼭 붙잡고 “스님, 예수님 믿고 천국까지 같이 갑시다.”라고 인사하

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예, 이제 목사님 집회에 따라다니며 간증도 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 아노라.”(행 16:10)


 

2. 말씀 연구

 

1) 불교인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조금만 마음을 낮추고 세상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을

알 수 있는데, 왜 저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고 있을까요?

 

로마서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 만물에 분명

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사야 44: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

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

 

고린도후서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사탄)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린도후서 4: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2)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마가복음 16:15~16,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

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3. 나눔과 적용

 

이번 과에서 각자 깨닫거나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전도자는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고 항상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통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상대가 중이든 창녀든, 점쟁이든 무당이든, 거지든 대통령이든,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누구를 만나든

지 내가 믿는 하나님,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내 생각을 접고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능력

이 말씀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 찬양(헌금) / 595장, 나 맡은 본분은

* 합심기도

오늘 깨달은 기도제목과 각자의 기도제목을 돌아가며 말하고,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 마침기도(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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