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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불교인 전도용 소책자[불교와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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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p 3,000원

 

 

 

 

[목차]

 

1. 나는 왜 불교를 떠나야만 했는가?

2. 불교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3. 불교에는 어떤 문제와 함정이 있는가?

4. 무당 집과 점쟁이 집은 왜 아직도 호황인가?

5. 스님, 예수 믿고 천국에 같이 갑시다.

 

 

[미리보기]

 

2. 불교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원래 불교는 깨달아 지혜를 얻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곳이지 신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종교가 아닙니다. 즉

불교는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는 곳이지 인간 영혼을 다루는 곳이 아닙니다. 참 종교란 신을 믿음으로 영혼이 구

원을 얻는 것인데, 석가는 원래 신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주의자였을 뿐만 아니라, 석가 자신도 신이 아니라 인

간입니다.

 

석가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신이 아니라 피조물 즉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석가는 자신도 인간이며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할만한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도 구원할 능력

이 없어서 진리를 찾아 헤매다가 죽은 사람에게 가서 구원해달라고 매달리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고 모순 된 일

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위안을 얻고 싶은 것이 연약한 인간입니다. 그것은 아직 구원의 진리를 정확하게 모르

고 있기 때문입니다.

 

석가는 자신이 교주가 되거나 우상이 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석가를 불교의 창시자로 만들어서 종교화 한 것

은 석가를 이용해서 조직과 단체를 만들고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고 세력을 키우고 이권을 찾기 위한 타락한 석

가의 제자들이 만들어 놓은 산물입니다.

 

인도는 원래 미신의 나라입니다. 석가 당시에도 식물, 동물, 광물, 하늘의 해, 달, 별과 같은 자연을 신으로 숭배하

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부처(Buddha)는 BC 560년경 히말리야 산맥 남쪽 카필라바스투의 군주

의 아들로 태어나서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깊은 회의와 의문을 갖고 신의 존재와 영혼의 존재, 그리고 사후 세

계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29세에 부인 야소다라와 아들 나훌라, 아버지 정반왕을 버려두고 홀로 가출 후 입산

했습니다. 하지만 입산 후 6년 동안 뼈를 깎는 고행 끝에 35세에 나름대로 도를 깨우쳤으나 결국 신도 영혼도, 사

후세계의 천국과 지옥도 없으며, 생로병사의 인생문제도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

다.

 

방편(方便)이란 생로병사의 번뇌로 고통하고 방황하는 인간을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를 사실처럼

말하여 중생을 선도하는 수단을 말하는데, 인생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찾지 못한 석가는 결국 해답 대신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석가 생존 당시 인도에 귀사코타미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인에게는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외아들이 죽게 되자 여인은 그 충격으로 그만 정신이 돌고 말았습니다. 여인은 아들의 시체를 등에 업고

거리로 나가서 죽은 아들을 살려줄 사람을 찾아 이 마을 저 마을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마침 석가의 여 제자 한

사람이 기원정사라는 절을 찾아 부처를 만나면 죽은 아들을 살려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죽은 아들을 데리

고 온 여인을 본 석가는 “여인아, 죽은 아들을 살리려면 겨자씨가 있어야 하느니라. 단, 5대가 한 집안에 살면서

그동안 한 명도 죽은 사람이 없는 집에서 겨자씨를 얻어 와야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여인은 곧바로 마을로

내려가서 겨자씨를 찾았으나 5대가 한 집안에서 사는 동안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은 한 집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

다. 그래서 결국 겨자씨를 구하지 못하고 며칠 후에 부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요히 눈을 감고 있는 부처를 보고 비로소 환상에서 깨어나서 현실을 인정하고 아들의 시체를 산에 묻고 돌아

와서 부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석가는 다른 사람이 꾸며 놓은 이야기나 직접 만들어 낸 이야기를 가지고 인생들을 선도하고 가르쳤습니

다. 윤회설, 극락설, 전생설, 환생설과 같이 끝에 설(說)자가 붙은 말은 사실이 아니라 중생을 선도하기 위한 방편

으로 꾸며낸 이솝우화와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 극락설, 전생설, 환생설 등 종

교적인 이야기들은 모두가 사실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로하고 달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들이므로 그것을 사실

로 믿게 되면 오히려 스승인 석가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가서 고려장을 했습니다. 잠시 후 아버지는 지게를

버려두고 마을을 향해 황급히 내려갔습니다. 이때 같이 따라갔던 손자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손자는 불쌍한

할아버지를 버려두고 쏜살같이 달아난 아버지가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생각 끝에 손자는 아버지가 버리고 간 지게를 다시 지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 갔습니다. 이때 뒤를 돌아 본 아버

지가 “야 이놈아, 지게를 거기 버려두고 오지 못하겠느냐”며 야단을 쳤습니다. 그때 손자가 “아버지도 할아버지

처럼 늙으면 지게가 있어야 제가 아버지를 지고 와서 버릴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그 순간 정신이 반짝 든

아버지가 크게 깨닫고 할아버지를 다시 모시고 내려와서 극진하게 섬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불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예화인데, 이처럼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린다든지, 홍해를 가른다든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든지 하는 인생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지 못하고, 현재 처한 상태에서 사람들이

인생을 바르게 살도록 선도하고 깨우쳐 주는 것이 불교의 본질이며 동시에 여기까지가 불교의 한계입니다.

 

석가 자신도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얻지 못해 방황하다가 결국은 포기한 평범한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

문에 석가를 신격화해서 전지전능한 신으로 우상화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또한 그것은 본래 석가의 가르침

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석가는 자신이 신으로 숭배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역대상 16장 26절)

 

불교는 허무로 시작해서 허무로 끝납니다. 식중독으로 심한 고통을 당하며 죽어 가는 석가를 바라보며 슬피 우

는 제자들에게 “인생은 참으로 허무 무상하구나. 너희들도 나처럼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수

행 정진하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만약에 부처가 방편으로 가르친 윤회설과 극락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이라면 ‘내가 죽으면 곧바로 극

락으로 가니 슬퍼하지 말라’며 소망을 줬어야지 왜 인생이 허무하다고 했겠습니까? 하지만 부처의 죽음 앞에서

슬피 우는 제자들에게 극락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인생이 허무하다는 말만 반복한 것은 부처 자신이 신의

존재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내세를 부정하는 무신론자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처는 죽기 전에 “나는 너희들과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니 나를 신으로 숭배하지 말라. 만

약에 나를 신으로 숭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부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부처를 욕되게 하는 행위입니다. 석가는 자

신이 교주가 되거나 신의 위치에서 숭배 받기를 거부했던 깊이 깨달은 사람이었으며, 오히려 일부 불교 경전에

는 인류의 구원자인 예수님이 오시면 자신의 도는 아무런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荷蒔耶蘇來 (하시야소래) 언제가 예수 오시면

吾道之油無燈也 (오도지유무등야) 나의 도는 기름 없는 등과 같다

팔만대장경 라마다경 38:8

 

불교는 원래 깨달아 지혜를 찾고 몸과 마음을 수행하는 윤리, 도덕, 철학을 하는 곳이지 영적 세계와 내세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석가는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 하는 곳이며

수행하는 곳입니다.

 

한국 불교계의 거장이었던 이 성철 종정은 1982년 4월 초파일 설법에서 “극락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잠잘 때

꿈속에서 잠꼬대하는 것과 같다. 불교를 죽어서 극락이나 가려고 염불하는 종교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중이 목탁 치고 염불하여 명을 주고 복을 준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처럼 부처

이름을 팔아서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방편을 삼는다면 그 중은 사이비요 도둑이다. 그리고 그러한 중들이 사

는 절은 도둑의 소굴이다... 이제 불교는 절안에 있는 산신각이나 칠성각을 모두 철거하고 미신에서 벗어나서 불

교 본래의 위치로 되돌아 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성철은 1987년 사월 초파일 설법에서 “사탄이여 어서 오십시오.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로 거룩한 부처님입니다. 사탄과 부처는 허망한 거짓 이름일 뿐 본 모습은 추호도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들

은 당신을 미워하고 싫어하지만 그것은 당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부처인 줄 알 때에 착한 생각 악한 생

각, 미운 마음 고운 마음 모두 사라지고 거룩한 부처의 모습만 뚜렷이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악마와 성인을 다같

이 부처로 스승으로 부모로 섬기게 될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대립과 갈등은 다 없어지고 이 세계는 본래의

가장 안락하고 행복한 세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일체의 불행과 불안은 본래 없으니 오로지 우리의 생각에 있

을 뿐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가장 근본적인 길은 거룩한 부처인 당신의 본모습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

때 인생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됩니다. 선과 악으로 모든 것을 상대할 때 거기에서 지옥이 불타게 됩니

다. 선악의 대립이 사라지고 선악이 융화상통 할 때 시방세계에 가득히 피어있는 연꽃을 바라보게 됩니다. 연꽃

마다 부처요 극락세계 아님이 없으니 이는 사탄의 거룩한 본모습을 바로 볼 때입니다”라고 고백함으로서 자신이

궁극적으로 섬기는 실체가 곧 사탄임을만 천하에 고백했습니다.

 

성철은 부처가 추구하는 도를 깊이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철은 1993년 11월 세상을 떠나기 전 설법

에서 “한 평생 무수한 사람들을 속였으니 그 죄업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하다. 산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

져 그 한이 만 갈래니 한 덩이 붉은 해 푸른 산에 걸려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불교의 한계입니다. 불교에서 최고로 깨달은 사람은 자신이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깨닫고 죽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들은 자신이 지옥으로 간다는 것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것은 불교

의 궁극적인 도달점이 인생의 문제와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깨닫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깨달아도 죄와 사

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

라”(사도행전 4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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